• 2025. 12. 30.

    by. 미르메코코리 리포트

    미르메코코리(Myrmecochory)는 개미에 의해 씨앗이 분산되는 식물의 전략으로, 식물과 동물 간 상호작용의 전형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이 메커니즘은 씨앗에 부착된 영양 조직인 엘라이오솜(elaiosome)을 통해 개미를 유인하고, 그 대가로 식물은 이동 거리 확대와 발아 환경 개선이라는 이점을 얻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호작용이 나타나는 식물은 특정 종 몇 개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분류군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하거나 반복적으로 등장한 사례가 보고되어 왔다.

    문제는 이러한 보고들이 단순히 종 단위로 축적되었을 뿐, 그 분류학적·지리학적 분포에 대한 체계적 분석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르메코코리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한다’는 표현은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 어떤 식물 분류군에서 빈도가 높고, 어떤 계통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이 메커니즘의 진화적 조건과 생태적 한계를 파악하는 핵심이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보고된 미르메코코리 사례를 바탕으로, 이 메커니즘이 어떤 식물 분류군에서 주로 출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분포가 지리적·생태적 맥락에서 어떤 경향을 보이는지를 정리해 본다.

     

    미르메코코리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주요 속과 과의 특징

    현재까지 미르메코코리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고된 식물 분류군은 특정과(Family)와 속(Genus)에 집중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과거부터 활발히 연구된 속에는 Viola(제비꽃속), Corydalis(현호색속), Trillium(세잎양지꽃속), Sanguinaria(블러드루트속) 등이 있다. 이들은 주로 쌍떡잎식물에 속하며, 그중에서도 그늘진 임상 환경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들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과 단위에서 보면, Papaveraceae(양귀비과), Fabaceae(콩과), Lamiaceae(꿀풀과), Asteraceae(국화과), Euphorbiaceae(대극과) 등 다양한 식물군에서 미르메코코리 형태가 보고되었다. 이처럼 특정한 분류학적 그룹에 편중되지 않고, 여러 계통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미르메코코리가 수렴진화적 특성을 가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서로 다른 계통의 식물이 독립적으로 개미와의 상호작용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미르메코코리 분포의 지리적 편중성과 고도성

    흥미로운 점은 미르메코코리가 보고된 식물 종의 상당수가 중위도 지역의 낙엽활엽수림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반구에서는 북미 동부, 유럽 중부, 동아시아 등 기후 변동이 크고 계절성이 뚜렷한 지역에서 미르메코코리를 보이는 식물이 특히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지역은 낙엽층이 풍부하고, 토양의 유기물 함량이 높으며, 개미 활동이 지표면 근처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생태적 특징을 공유한다.

    남반구에서는 호주 남동부와 남아프리카의 케이프 식생대처럼, 특정 고도와 강수 패턴을 갖는 지역에서 미르메코코리가 집중적으로 보고된다. 이들은 모두 개미 다양성이 높고, 척박한 토양 조건을 가진 생물 다양성 핫스팟이라는 공통된 환경 조건을 갖는다. 이는 미르메코코리의 분포가 단순히 온대-열대 구분을 넘어서, 미세한 생태적 조건에 따라 세밀하게 분화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생태적 조건이 분류군별 출현 빈도에 영향을 주는 방식

    미르메코코리의 식물 분류군 분포를 해석할 때, 단지 계통 분류학적 연관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일한 과에 속하더라도, 생육지의 환경 조건이나 생장 주기, 씨앗 방출 시기 등에 따라 개미와의 상호작용 여부가 달라진다. 예컨대 같은 꿀풀과(Lamiaceae) 식물이라 하더라도, 엘라이오솜 발달 여부나 씨앗의 크기에 따라 미르메코코리가 나타나기도 하고, 전혀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식물군이 아니라, 특정 생태 조건을 가진 종들만이 미르메코코리를 택하고 유지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조건에는 얕은 토양층, 경쟁이 심한 숲 속 환경, 분산 거리를 늘릴 필요가 있는 씨앗 특성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미르메코코리 분류군의 분포는 단순히 ‘누가 개미를 쓰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그것이 선택되었는가’라는 조건 기반의 전략적 결과로 보아야 한다.

    미르메코코리가 보고된 식물 분류군은 어떻게 분포하는가

    엘라이오솜의 구조와 기능이 분포군 차이를 만들어내는 방식

    미르메코코리가 보고된 식물 분류군 간에는 엘라이오솜의 형태, 화학적 조성, 위치에도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어떤 종은 씨앗의 한쪽 끝에 명확한 엘라이오솜을 부착하는 반면, 다른 종은 전체 씨앗 표면에 퍼지게 분포시킨다. 또 어떤 분류군에서는 지방산과 아미노산 비율이 높은 엘라이오솜이 개미의 선호도를 높이는 반면, 다른 군에서는 중성 지방 중심의 보상 구조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진화적 우연이 아니라, 각 분류군이 서식하는 개미 군집의 선호 성향이나 경쟁 조건에 맞춰 조정된 결과일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지역의 개미는 특정 화학 성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에 따라 해당 지역의 식물군은 그 성분 중심으로 엘라이오솜을 발달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미세한 보상 구조의 조정은 결국 분류군 차이로 나타나며, 종의 분산 전략의 미세 조정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식물 생장 형태와 미르메코코리 채택의 상관성

    미르메코코리 분류군을 살펴보면, 이 전략은 주로 지표면 가까이에 위치하는 식물에서 채택되는 경향이 있다. 포복형, 무경형(줄기가 거의 없는 형태), 혹은 낮은 키의 다년생 식물이 대표적이다. 이는 씨앗이 떨어졌을 때 개미가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목본류나 교목성 식물에서는 미르메코코리가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이는 씨앗이 지면까지 떨어지는 데 물리적 제약이 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생장 형태 자체가 미르메코코리 채택 여부를 가르는 전제 조건 중 하나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미르메코코리가 보고된 분류군은 식물의 형태학적 구조와 공간 점유 방식까지 함께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분류학적 특성에 생태적 조건을 결합한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미르메코코리가 누락되기 쉬운 분류군과 연구 사각지대

    현재까지 미르메코코리 사례가 많이 보고된 분류군은 비교적 온대 지역의 식생과 북반구 중심의 생태계에 편중되어 있다. 이는 실제 분포 편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구가 집중된 지역과 분류군에만 관찰이 이루어진 결과일 수 있다. 특히 열대 우림 지역이나 고산 지대, 사막성 식생 등에서는 아직 미르메코코리가 충분히 조사되지 않았고, 일부 분류군은 아예 연구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태다.

    또한, 씨앗이 작고 눈에 띄지 않거나 엘라이오솜이 미세한 구조로 존재하는 종은 미르메코코리 여부를 관찰하는 데 제약이 많아, 실제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고되지 않은 사례가 누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미르메코코리의 분류군 분포를 논할 때는, ‘보고된 바 없음’이 반드시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음을 전제로 삼고, 관찰 사각지대와 조사 편향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병행되어야 한다.

     

    분류군 분포는 생태적 조건과 진화적 조정의 산물이다

    미르메코코리가 보고된 식물 분류군은 일부 계통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 범위는 생각보다 넓고 다양한 생태적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미르메코코리는 특정한 계통적 특성보다는, 개미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조건을 얼마나 충족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분류군에서 반복적으로 진화한 결과물이다. 이에 따라, 분포는 생물학적 계통보다 환경적 적응성과 전략적 필요성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앞으로 이 메커니즘에 대한 더 넓은 지역과 다양한 분류군에 대한 탐색이 진행된다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미르메코코리 사례가 추가로 밝혀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분류군 분포를 단지 보고 빈도에 따라 단정 짓기보다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생태적 조건, 진화적 제약, 조사 편향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정교한 해석이 필요하다.